왕상 20:23-43 <하나님이 벤하닷을 치시다>
이스라엘에게 패한 시리아의 신하들은 하나님이 산의 신이기 때문에 졌고, 평지에서 싸우면 이길 것이라 벤하닷을 부추기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예언자를 통해 이번에도 너희가 분명 승리할 것이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주님이신줄 알게 될 것이라 예언한다. 후에 다시 한번 시리아와 이스라엘에 맞붙어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아합은 조약을 맺고, 벤하닷을 풀어준다. 예언자는 하나님이 멸망시키기로 한 자를 살려준 대가로 아합과 아합의 백성들을 멸망시키겠다 하신다.
아합이 벤하닷을 놓아주는 것이 과연 잘못된 선택이었을까라는 생각은 솔직히 조금은 든다. 후에 벤하닷을 통해서 시리아가 하나님의 복음을 접하게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도 있음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벤하닷의 시리아를 멸망시키길 원하셨다. 후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걸 보면, 명확하게 아닌 건 아니라고 미리 아합과 이스라엘에게 전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스라엘 군대는 시리아 군대에 비하면, 마치 작은 염소 두 떼와 같았고, 시리아 군대는 그 땅을 가득 채울 만큼 많았다.'
라는 구절을 봤을 때, 이스라엘 군대가 시리아 군대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겼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기적의 역사다. 하나님이 개입하셨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근데 오늘 본문에서, 아합이 감사기도를 드리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드리는 부분이 나오지 않는다.
가장 절박하고 원했던 걸 얻으니,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어쩌면 다시 한번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고 싶으셔서, 이러한 메시지를 전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님의 응답이 이건 100%다 싶을 정도로 명확하게 확신을 갖는 것도 사실 위험한 생각이라고도 들어서, 이 부분에서는 적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상황을 좇아 하나님을 따르는 게 아닌, 하나님을 좇는 것이 더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부분은 분명하다. 하나님이 우선이 되었다면,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을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민감하게 캐치했다면, 어떠한 좋은 조건들을 벤하닷이 내놓았다 하더라도 벤하닷을 풀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때로는 지금의 직장, 사는 곳, 주변의 사람들 모든 것이 사실 감사를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들인데, 상황에 따라 오히려 불평과 불만을 감사보다 우선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상황이 커 보여 때론 불평과 불만이 당연히 감사보다 커질 수는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고, 함께하시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상황을 좇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먼저 좇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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